시험기간 동안 영화를 꽤 많이 봤다. 3일 연속으로 영화 세 편을 봤는데, 그 시작을 알린 건 바로 노트북이다. 최근 하트시그널을 보다가 거기서 영화 몇 편이 나왔는데, 그중에서 왠지 노트북이라는 영화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방송에 나온 영화 중에서 노트북을 제외한 전부 다를 봤기 때문에는 물론 아닐 것이다. 최근 들어 멜로나 밀리터리 위주로 영화를 많이 보는데, 습관이 참 무서운지 이번에도 멜로 영화를 골랐다. 물론 그다음 날 아메리카 스나이퍼를 봤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을 것이다.
요즘 얼마나 디지털 세계에 빠져있는지 영화를 보는 내내 도대체 왜 이 영화의 제목이 노트북일까 생각했다. 줄곧 컴퓨터 노트북을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이 되어서야 '아, 노트북이 그 이야기를 써놓은 공책을 이야기 한 것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렇다. 이미 너무 나란 사람은 아날로그 세계에서 벗어나 있던 것이다. 예전에는 공부도 항상 공책으로 했는데, 이제는 필기도 아이패드로 한다. 예전에 종이와 잉크는 절대로 완전히 대체될 수 없다고 믿었는데, 오늘도 아이패드를 쓰는 내 모습을 보면 이미 기술의 발전에 흠뻑 빠져들어있다. 무엇이든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는 이제 너무 편한 것만 추구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고민해본다. 물론 그것이 나쁜 것 만은 아니지만,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많은 요소들이 서서히 사라져만 가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하고, 영화 얘기를 조금 해보려고 한다. 사실 위에 내용과 조금은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 대학교 4학년 1학기가 지난 지금, 삶에 대한 고민이 많은 시기이다.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지,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지 하루에도 수십 번은 고민한다. 그런 나에게 노트북에서 나오는 주인공 남녀의 삶은 그저 내가 바라는 이상향일 뿐이다. 주인공 노아는 본인이 사랑하는 목수 일로 본인 만의 집을 지었고, 그곳에서 본인이 사랑하는 여자와 결국 살게 된다. 그에게 돈이 중요한가? 그렇지 않다. 명예, 권력 모두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없어도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앨리도 선택의 기로에 놓이지만, 결국 본인이 속하던 세상, 부와 명예와 권력이 보장된 삶을 포기하고 노아와 함께 살아간다. 이유는 간단하다. 노아와 함께 있으면 본인이 정말로 좋아하는 일, 그림 그리는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화에서 나올법한 이야기처럼 그렇게 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가 현실성이 있는가? 열에 아홉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한다. 현실과 타협을 하고, 너무 이상적이지 말라고 한다. 예전의 나는 그 아홉 중 한 명이었다. 근데, 오늘의 나에게 그렇게 물으면 '그런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말할 것 같다. 우리 모두는 바쁘고 힘든 삶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게 바쁘게 살아서 돈을 많이 벌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삶은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일이고,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이다. 사회가 개인을 만들어가는데, 그렇게 만들어가는 방향에 나는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 같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고 현실에 타협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고,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세상의 시선과 나의 생각 속에서, 현실과 이상 속에서 지금 헤매고 있다. 그리고 이런 노트북이라는 영화를 볼 때마다 이상이 나를 바늘로 쿡쿡 찌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왜 너는 해보지도 않고, 이런 삶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그러고 나서 영화를 본 뒤 잠에서 깨 공부를 하고 인턴을 하는 내 모습을 보면 현실이 이렇게 이야기하는 듯하다.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지금 너는 이렇게 살고 있는데.'
허접하지만 요 며칠간 내가 내린 결론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 적절한 타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너무 이상에 빠져들기에는 현실이 너무 가혹하고, 현실에 너무 빠져들기에는 낭만이 없다. 근데 생각해보면 나는 여태까지 현실에서만 빠져 살아왔다. 바삐 살아왔고, 진정 내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경험해보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내 생각에 그것은 이상의 영역이다. 서른이 되기 전 잠시만이라도, 이상에 푹 빠져드는 삶은 어떨까 생각한다. 현실에게 안녕을 외치고 정말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떠나보고 싶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한지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나는 학교라는 현실에 빠져 살고 있다. 그리고 취업이라는 또 다른 현실의 나를 유혹하고 있다. 이제는 진정으로 현실의 알을 깨부수는 시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물론 어느 정도의 타협점을 찾아서 말이다.
예전부터 살아가는 데 있어 본인의 가치관과 중심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나는 그런 가치관이 확고한 사람이라고 믿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에 계속 부딪치며 깨져가는 가치관을 보면서 아직 본인이 많이 부족한 것을 느낀다. 더 많이 공부해야 하고, 더 많이 배워야 한다. 그중 하나가 영화가 된 지금 약간의 행복감을 느끼기도 한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았기에 기억에 남는 장면 몇 장면을 남기고 싶다. 나의 10, 20년 뒤 삶이 이런 모습이 이렇다면 누구보다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진정 본인을 찾게 해주는 연애를 하는 두 사람. 그리고 본인이 사랑하는 일로 사랑하는 사람과 살 집을 지은 노아. 그리고 그곳에서 그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한다. 마지막까지도. 언제나 그랬듯이 레이첼 맥아담스의 미모는 훌륭하다. 요즘 나에게 있어 영화배우 일 순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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