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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 리뷰] 국가와 개인

요즘 한국 영화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특히 1990년대와 2000년대 개봉한 영화 위주로 보곤 하는데, 왜 여태껏 이렇게 훌륭한 한국 영화들을 안 보고 있었는지 후회할 정도로 정말 잘 만들어진 영화들이 많은 것 같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요즘 개봉한 영화들은 대부분 상업성 위주의 영화여서 그런지 예전 영화를 볼 때만큼의 떨림이나 감동이 덜 한 듯한 느낌을 계속 받는다. 저번에 공동경비구역 JSA를 본 이후에 군대 관련 영화를 하나 더 보기로 생각했고, 우리나라 최초의 1000만 관객 영화인 실미도를 보게 되었다. 이 영화가 2003년에 개봉하였는데, 그때 당시 필자의 나이는 8살이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그때 친한 친구와 친구 엄마와 나와 엄마가 함께 영화관을 갔었는데, 나와 친구는 무슨 영화를 봤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그때 친구 엄마와 엄마는 실미도를 보았다. 왜 이렇게 쓸데없는 기억이 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러하다. 그리고 제작년에 고등학교 친구들과 무의도를 방문했었는데, 물이 빠질 때 실미도도 들렀었다. 그때 당시 만약 실미도를 본 후였다면, 더욱 기억에 남을 장소였는데, 그때 당시 나에게는 하나의 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저 '아, 영화 실미도에 나온 섬이구나' 정도?

실미도 영화를 어떻게 해야 한 줄로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우선은 영화의 기억을 하나씩 되살려보도록 한다. 우선 실미도는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하여 만들어진 영화인데, 시작은 1968년 청와대 무장공비 침투사건이다. 이는 필자 역시 군대에 있을 때 판문점 도끼사건과 더불어서 지겹도록 정신교육을 받은 내용이다. 항상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모습을 실제로 영상으로 보니 다른 느낌이었다. 이것이 바로 글과 영화의 차이점이랄까. 어쨌든, 북한에 맞서 대한민국에서도 평양에 침투할 특수임무를 띤 684 부대를 만들게 된다. 영화에서는 범죄자들을 모아서 부대를 만들었다고 나오지만, 실제로는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일반인들로 구성이 되어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영화가 지나치게 비약되고, 현실과는 다르다며 소송도 걸리고 많은 비판을 받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사실과 맞건 다르건, 영화는 나름대로의 작품성이 있고 그를 위해서는 오로지 사실만을 전달할 수 없기 때문에 비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만약 사실과 똑같이 만들게 된다면, 그것은 바로 다큐멘터리 영화이지, 우리가 좋아하는 픽션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출처: 실미도

 

이때부터 영화에 본격적으로 집중하게 된다. 어디서 많이 본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최근에 킹덤에 나온 허준호 배우이다. 외에도 설경구, 안성기, 정재영, 임원희, 엄태웅, 강신일 등 지금 생각해보면 절대 한 영화에 나올 수 없는 초호화 라인업이다. 옛날 영화를 볼 때 젊은 시절 배우의 모습을 보는 재미도 참으로 쏠쏠하다. 조 중사가 범죄자에게 배에서 내려서 수영을 하라고 하자, 사람들은 말을 거역했고, 수류탄을 던지면서 앞으로 펼쳐질 지옥훈련을 암시한다.

출처: 실미도

 

영화를 보면 진짜 조 중사는 악당이 따로 없다. 부대원들을 맨날 패고 뾰족한 철조망을 밑을 지나가는데 느리다고 철조망을 밟는 행위까지, 부대원들의 아픔이 스크린 밖으로 느껴진다. 사실 범죄자는 용서받지 말아야 할 존재지만, 그런 그들이 불쌍하게 여겨질 정도로 혹독한 훈련을 받는다. 그리고 점점 평양에 침투하기 위한 몸과 정신을 만들어간다.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문득 군대 시절이 떠오르면서 '세상에 못하는 것은 없었지'라는 생각이 다시 생각난다. 확실히 그때보다 지금 많이 게을러졌고 의지도 약해진 것을 많이 느낀다. 사람이 극한 상황에 몰리면 어떻게든 해낼 수 있다는 것을 3년 전 그렇게 온몸으로 느꼈는데, 교활하게도 전역하자마자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자극이 없으면 쉽사리 바뀌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내심 이 영화를 계기로 한 번쯤 바뀔 모멘텀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출처: 실미도

 

안타까운 장면이다. 3조장인 설경구가 외줄을 못 타는 팀원을 제외하고 모두 건넌 다음 다시 돌아가 팀원을 구하려고 하지만 죽고 만다. 첫 번째 희생자이다. 여기서 안성기 준위는 실전을 위하여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실미도에 31명의 인원들이 훈련을 받았는데 그중에 사망자도 발생했다고 한다. 영화로 받아들일 때도 힘들었는데, 실화라고 하니 더욱 안타까웠다. 오직 김일성을 암살하겠다는 생각 하나로 훈련을 반복하는 그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단합력과 의지가 강해진다.

출처: 실미도

 

하지만, 출항 당일에 작전 취소 명령이 떨어졌다. 남북 간의 관계가 갑자기 좋아지기 시작하였고, 윗사람들 입장에서는 684부대는 한순간에 없어야만 하는 존재로 변하게 된 것이다. 인간병기가 될 만큼 강해진 684 부대원들은 그저 섬에 갇힌 채 답답한 생활을 반복하게 되고, 그 지루함을 못 견딘 병사 둘이 무의도에서 강간을 저지르게 된다. 마음이 불편해졌다. 실미도란 영화를 보면서 필자가 집중할 수 있었던 까닭은 영화 장면 하나하나마다 각기 다른 감정을 이끌어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역시 실제 있었던 사건이라고 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역시 범죄자는 범죄자였구나 하는 안타까운 탄식이 절로 나왔다.

출처: 실미도

 

결국 위에서 684 부대를 모두 사살하라는 명령이 떨어졌고, 결국 몇 달을 함께한 교관과 684 부대원들이 서로에게 총을 겨누게 된다. 사실 이 장면을 계기로 영화의 흐름이 전반적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그전에는 조 중사가 나쁘고, 박 중사가 진정 병사들을 위하는 모습을 영화 내내 보여줬는데, 실제로 병사들을 죽일 상황이 닥치자 박 중사는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변하고, 그런 박 중사에게 조 중사는 총을 겨눈다. 여기서부터 실제 영화의 주인공은 조 중사로 변하게 된다. 과연 내가 이 상황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하였을까?

본인의 부하들을 죽이거나 아니면 본인이 죽거나. 사실 그 어떤 누구도 부하를 위해서 본인을 희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조 중사의 모습이 영화 내에서는 영웅처럼 비치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결국 저렇게 반대한다고 하여 달라질 게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장 높은 안성기 배우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저들은 적어도 군인으로써 임무를 다하다 죽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난 군인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서 너희와 목숨을 건 약속을 저버릴 수 없었다.'

'비겁한 변명입니다.'

부대장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교관들에게도 군인으로써 임무를 다하게 하고, 본인도 684부대원들과 한 약속을 지키는, 두 집단이 서로 총을 겨누게 하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정말 비겁한 변명이었다. 그럴듯한 말로 포장을 한 그의 마음 한편에 죄책감이 남아있는지 자결한다. 인간병기라고 불릴 만큼 혹독한 훈련을 받은 684 부대원들의 승리는 이미 예견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본인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섬 밖으로 나가서 민간인의 버스를 탈취하고 청와대로 향하게 된다.

출처: 실미도

 

모두가 알고 있을 법한 실미도 최고의 장면이 아닐까 싶다. 이 사탕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울컥한다. 결국 조 중사는 부대원들의 죽음을 막지 못하고 울며 절규하며 영화가 끝난다. 이 부분 역시 실화에서 조금 각색된 부분이 있다고 하는데, 버스에서 자결을 한 것이 아니라 버스 운전사가 총격으로 갑자기 목숨을 잃는 바람에 비상상황에 대비하여 수류탄을 까고 손에 쥐고 있던 병사가 수류탄을 놓쳐서 허무하게 버스 내에 있던 부대원들이 죽었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서 살아남은 나머지 4명은 끝내 사형 당했다고 한다.

우리에게 잊힌 이 안타까운 사건이 영화를 통해서 수면 위로 올라왔다. 1990년대 쓰인 책을 토대로 세상에 점차 나왔던 이 사건은 2003년 실미도라는 영화로 대한민국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게 하였다.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거지만 집권하는 정권에 따라서 개봉하는 영화도 다르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이러한 영화가 2000년 도에 많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도 그러한 데서 기인하는 게 아닌가 싶다. 어쨌거나 이는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서 참으로 슬펐던 사건이고, 이를 통해서 고쳐나가고 반성해 나가야 한다.

예전부터 많이 느꼈던 것인데, 사람들은 아무리 미시적으로 자신을 바꾸어나가고 주위를 바꾸어 나갈 순 있어도, 세상이 돌아가는 거시적인 흐름은 제어할 수가 없다. 내가 돈을 악착같이 모아서 가게를 차렸는데, 갑자기 코로나 같은 바이러스가 유행하게 되면 적자를 봐야 하는 것이 한 예가 될 것 같다. 이처럼, 사람은 거시적인 흐름을 거역할 수는 없고 그 흐름에 따라가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흐름에 따라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국민을 품을 수 없지만, 적어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흐름에 따라올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주어야 하고, 사람들도 본인들이 노력을 거듭하여 같이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 그런데 영화에서 보여주는 국가의 모습은 다르다. 만약 남북 관계가 좋아졌으면, 목적을 잃은 684 부대의 사람들이 잘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시키면 됐었다. 하지만, 그들이 범죄자라는 이유로,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그냥 방관하고 결국은 비극이 일어나게 된다. 결국은 사람이 모여서 사회가 되고 사회가 모여서 국가가 되는 것이다. 물론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은 없지만, 적어도 범죄가 일어나지 않고 사람이 죽어나지 않는 그런 사회를 위해서는 항상 권위자들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조 중사가 정말 멋있다고 느꼈던 것은 끝까지 본인의 부하들을 가족처럼 챙겼고, 그런 사람들도 하나의 개인으로써 존중해 주고 이끌어주기 때문이었다.

많은 감정이 뒤섞이는 영화다. 끝나고 오랜만에 사진첩을 뒤지며 실미도의 모습을 기억하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무의도에서의 사진밖에 없었다.

나에게는 다시 한번 가봐야 하는 그런 섬이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