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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리뷰]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야만 한다

미국 영화계의 거장이라고도 불리는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이다. 비교적 최신 영화로 2011년의 영화이며,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영화관에 신작이 상영되지 못하는 요즘, 지난 명작 다시보기로 재상영될 만큼 당시 인기를 끌었던 영화이다. 우디 앨런 감독은 본인만의 독특한 영화를 만들기로 유명한데, 본래 해당되는 장르를 진지하게 밀고 나가는 대신 '우디 앨런' 식으로 조금씩 틀어서 장르를 전개하기로 유명하다. 사실 우디 앨런 감독이 남긴 작품들은 많지만, 블록버스터급으로 히트친 작품은 없는 것으로 안다. 가장 히트를 친 작품 중 하나가 바로 '미드나잇 인 파리'이고, 그전에 유명한 영화로는 '애니홀'이 있다. 필자도 우디 앨런 감독의 작품을 보는 것이 처음이라 정확히 어떤 류의 영화를 만드는지는 이 영화를 보면서 파악하는 게 나을 듯하다. 우디 앨런 감독은 할리우드 최악의 스캔들로도 유명한데, 본인의 수양딸인 순이와 결혼했다는 것이다. 양아버지와 양딸의 결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편할 듯하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사건으로 많은 구설수에 오르기도 한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감독에 대한 전반적인 리뷰는 여기까지로 하고,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출처: 미드나잇 인 파리

 

언젠간 한 번쯤은 꼭 가보고 싶은 파리이다. 사실 예술과는 좀 거리가 먼 생활을 해왔던 나지만, 적어도 파리하면 예술가들의 도시라는 것쯤은 들어봤다. 이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은 할리우드 작가인 길이 1920년대 파리에서 활동을 하던 예술계의 거장들을 시간여행하여 새벽마다 만나는 이야기다. 새벽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예술가를 만나는 픽션적인 요소가 상당히 흥미로웠는데, 아는 예술가가 나올 때마다 '그래도 저 사람은 알지. 나란 사람도 최소한의 교양을 지니고 있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사람이 나오면 인터넷에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출처: 미드나잇 인 파리

 

처음 나오는 인물은 스캇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로 잘 알려져 있는 작가이다. 사실 위대한 개츠비가 너무 유명한 소설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다른 소설은 잘 모른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하나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위대한 개츠비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과는 친구를 할 수 없다'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대단한 소설인 것은 확실하다. (나는 읽었으니, 친구를 할 수 있겠지...?) 옆은 젤다 피츠제럴드로 그의 아내인데, 그녀도 작가였지만 남편만큼은 유명하지 않았어도 남다른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이다음에도 '노인의 바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의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나오고, 1920년대 파리의 예술가에게 보금자리 같은 역할을 하였던 거투르드 스타인이 나온다. 이쯤 되면 예술가가 한 명씩 나올 때마다 영화에 빠져들게 되는 묘미가 살아난다. 극 중에 나오는 미국 국적의 작가들을 보니 이 사람들이 말로만 듣던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출처: 미드나잇 인 파리

 

 

극 중에서 헤밍웨이는 다른 예술가에 비해 조금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편이다. 그가 한 말 중에서 위 구절이 가장 마음에 와닿는다. '진정한 사랑은 죽음마저 잊게 만든다네.' 정말 죽음마저 잊게 만드는 사랑이 있을까 고민하게 되는 구절이다. 나는 사랑을 할 때만큼은 모든 걸 바칠 만큼 열정적이어야 한다 정도로 받아들였다. 내 목숨도 아깝지 않을 만큼 어떤 사람을 사랑해봐야 그게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이 외에는 쭉 많은 예술가들이 나온다. 파블로 피카소, 모딜리아니, 살바도르 달리, 등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화가들이 줄지어서 나온다. 사실 미술에는 아예 식견이 없기 때문에, 이름 정도로만 언급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미술 쪽으로는 이번 영화를 계기로 식견을 좀 넓혀야겠다.)

출처: 미드나잇 인 파리

 

주인공 길은 항상 1920년 대의 파리를 동경한다. 그리고 1920년 대 파리에서 만난 아드리아나는 1890년대 벨 에포크 시대를 동경한다. 1890년 대 예술가들은 르네상스 시대를 동경한다. 현재는 현재일 뿐 벗어날 수 없지만, 사람들은 항상 과거를 동경하고, 그 때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막상 그 과거로 돌아가게 되면 그 과거는 현재가 되어버리고, 또 다른 과거를 동경하게 되어버린다. 현재의 삶이 불만족스럽기 때문인 아주 당연한 이유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도 있다. 가령 '요즘 시대엔 취업도 잘 안된다는데, 그냥 차라리 마음 편하게 살던 시대로 돌아가고 싶다.' 같이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말 역시 과거를 살아보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 아닌가. 이 세상에 과거, 현재, 미래가 존재하니, 미래는 알 수 없고 현재는 별로고 그러니 과거로 돌아가 보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 세상 누구든 불만족스러운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 현실을 핑계로 과거를 동경하는 것은 현재를 도피하고 싶은 것뿐이다. 과거를 동경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거는 동경한 채로, 어쨌거나 현재를 살아가야만 한다. 우리는 너무나도 불만족스러운 일에만 정신을 집중한 나머지 현재의 만족스러운 것들은 자주 간과하는 듯하다. 한 번쯤은 생각을 바꾸고 삶의 행복한 부분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불만만 갖고 살기에는 삶이 너무 길다.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과거의 예술가나 작가의 작품을 아는 건 과연 어떤 의미일까라는 것을 생각해보았다. 박식해 보이기 위해서? 교양 있어 보이기 위해서? 하지만,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영화에 나오는 예술가들을 다 알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왜 고전 소설을 읽고, 명작을 보러 박물관에 가고, 클래식 노래를 듣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내가 내린 결론은 '지식이 주는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어떻게 보면, 이 모든 행위가 '박식하고 교양 있어 보이려고'가 맞는 대답일 수 있다. 돈과 같은 물질이 주는 즐거움이 너무 중요한 이 세상에서 이런 예술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지식이 주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듯이, 어떤 것을 보더라도 그것의 역사나 의미를 알고 보면 받아들이는 깊이가 다른 것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물론, 필자 본인도 아는 게 많은 것은 아니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미술 작품의 세계는 전혀 알지 못하고, 영화의 세계도 모르기 때문에 점차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본인은 고전 소설을 좋아하는 편에 속하는데,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극 중에 나오는 작가들의 책은 거의 다 읽어보았다. 이 영화에서라도 살바도르 달리나 모딜리아니가 나왔을 때보다 스콧 피츠제럴드나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나왔을 때 더욱 반가웠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고전 소설은 일반 소설들과 다르게 그것만이 주는 감동과 깊이가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재수 없어 보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느낀 감정은 그러하다. 그리고 고전 소설을 읽어보면 왠지 모르게 자신이 그 시대에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허풍으로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그 과거를 잠시라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고전 소설뿐이라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들어 바쁘다는 핑계로 책과 거리를 멀리한지도 오래되었는데, 이 영화가 책과 다시 가까워지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출처: 미드나잇 인 파리

 

비 내리는 파리의 거리, 왠지 모를 묘한 분위기를 뽐낸다. 사실 파리를 너무나도 가고 싶다. 이유가 없다, 그냥 파리에서 길거리를 거닐어 보고 싶다. 흔히들 얘기하는 유럽에 대한 동경이다. 물론 나는 한국에 살지만, 그래도 파리는 과거로 돌아갈 필요 없이 비행기 한 번이면 갈 수 있는 곳이니까. 예술의 도시는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아마 내년에는 갈 수 있겠지..?

끝으로 길의 약혼녀로 나왔던 레이첼 맥아담스의 얼굴이 기억난다. 너무 아름다우시다. 어바웃타임 영화 후에 처음 봤는데, 미모가 여전하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