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암역과 고려대역 사이에 사거리 주변에는 많은 골목들이 있다. 그 골목들 중에서 유독 닭갈비를 파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골목이 있다. 무언가 옛날 감성을 느끼며 합리적인 가격에 닭갈비와 함께 술을 마시고 싶은 날에 와야할 법한 분위기를 풍긴다. 골목을 들어서자마자 여러 집들이 보인다. 충주집, 형제집, 대성집, 부산집, 제기집. 어쩜 이렇게 간판도 다 비슷하고 이름도 비슷한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여기 있는 모든 집들을 가보진 못했지만, 예전에 처음으로 갔었던 형제집이 너무나도 기억에 남아서 이쪽 골목을 방문할 때마다 형제집을 들린다. 각 음식점 마다 차이점이 존재한다고는 하는데, 사실 잘 모르겠고, 형제집은 주먹밥을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다고는 얼핏 들어서 그냥 여기가 가장 좋은 것 같다.
이렇게 안에 들어가면, 이렇게 버너가 덩그러니 놓여져 있는 자리에 앉게 된다. 그리고 문 앞에서 아주머니가 요리를 한 다음, 우리에게 가져다주신다. 벽에는 고려대 학생들이 남기고 간 낙서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아마 이곳은 많은 고려대 학생들의 추억이 담긴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갈 때마다 든다. 왼쪽에 보이는 철문을 들어가면 또 다른 방이 나오고, 거기에는 더 많은 자리가 있다.
다소 이른 저녁에 도착하여 좀 어둡지만, 이런 식으로 구조가 되어 있고,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화장실이 있는데, 여기의 유일한 단점이 화장실에 문이 없다는 거다. 그래서 누군가 볼일을 보러가면 다른 한 사람이 같이 따라가서 문 앞에서 문지기 역할을 해줘야 한다. 단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느끼기엔 형제집만이 주는 특이한 추억거리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누가 음식점에서 화장실 문을 지킨다고 생각하겠는가. 그런 이유에서라도 아직까지 사장님이 문을 설치 안한게 아닐까? 너무 멀리갔나보다.
안쪽 방을 유심히 보면, 옆에 밥솥과 식기도구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집의 모든 것은 셀프다. 여기서 챙길 것을 챙기고, 저기 옆에 보이는 밥그릇에 밥을 먹을 만큼 담아서 주인 아주머니께 가져가면 참기름과 김을 듬뿍 넣어서 주신다. 이건 필수적으로 해야한다. 나도 처음에는 이게 뭐지 하고 갸우뚱했고,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는데, 간단하다. 밥그릇에 밥을 담고 아주머니께 찾아가서 밥그릇을 내밀면 알아서 제작해주신다. 그리고 그 밥그릇을 가져와서 알아서 주먹밥을 해먹으면 된다.
사실 그냥 밥, 김, 참기름만 들어가 있는 건데 음식이랑 같이 먹으면 어찌나 계속 젓가락이 가는지, 알다가도 모르는 맛이다. 왠지 모르게 친근감이 있고, 계속 먹고 싶은 그런 음식이다. 특별한 맛은 없다. 그냥 간이 상당히 잘 되어 있는 밥 같은 느낌이다.
메뉴판이다. 1인분에 대부분의 음식이 8000원으로, 저렴한 가격이다. 우리는 닭똥집 1인분과 닭곱창 1인분과 맥주를 시켰다. 저번에 왔을 때는 닭갈비에 닭곱창을 시켰는데, 사실 여기 닭똥집이 정말 맛있다는 소리에 이번에는 닭똥집을 시켜봤다. 닭똥집은 사실 그 이름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단어이다. 닭의 위를 가르키는 말이며, 모래주머니라고도 불린다. 대부분 닭똥집은 술안주로 많이 먹는 음식이다보니, 술을 별로 안좋아하는 나도 닭똥집을 먹기 위해 술을 시켰다(?)
먼저 닭똥집이다. 아주머니가 요리를 완전히 다해서 주신다. 간단하게 정말 닭똥집과 버섯만 들어가 있다. 근데 여기 닭똥집이 진짜 내가 먹어본 닭똥집 중에서 가장 맛있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버섯에 있었다. 버섯의 간이 너무나도 짭조름하게 잘 되어 있어서, 닭똥집과 같이 먹으면 정말 환상의 조합이었다. 닭똥집 특유의 쫀득한 식감과 버섯의 간이 잘 어우러져 자꾸만 입이 가게 하는 맛이었다. 닭똥집을 계속 먹다보면 근육을 먹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는데, 사실이다. 닭은 음식을 소화시킬 때, 사람들처럼 이빨이 없어서 잘게 씹을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닭똥집의 근육이 수축을 하면서 음식물을 잘게 쪼개는 역할을 담당한다고 한다. 그래서 닭똥집이 특유의 쫄깃한 식감을 내는 것이다. 아무튼, 소금장에 찍은 닭똥집을 버섯에 곁들여 먹으면 그보다 맛있을 수가 없다.
사실 닭곱창이라는 음식을 여기서 처음 먹어봤다. 닭갈비랑 닭똥집만 먹어봤지, 닭곱창이라는 메뉴가 있는지도 몰랐다. 닭곱창을 먹어보면 평소에 먹어보았던 닭갈비의 양념과 같은 양념을 쓰는데, 식감이 확연히 다르다. 닭을 먹는 것이 아니라, 곱창을 먹는 듯한 쫄깃한 식감이 너무 좋았다. 퍽퍽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다지 질기지도 않은 그런 맛이다. 심지어 깻잎과의 조화도 너무 좋았다. 닭똥집만 먹으면 약간 물릴 수도 있었는데, 매콤한 양념이 들어간 닭곱창을 같이 먹으니 번갈아가면서 먹는 재미가 있었다. 곱창인데도 냄새가 나지 않아서 너무 맛있게 먹었다. 물론 음식을 먹는 중에 계속해서 주먹밥 한 숟갈씩 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 집은 그 특유의 분위기가 너무 좋다. 학생일 때 누군가와의 추억을 간직하기에 좋은 음식점이라 생각한다. 음식점의 맛도 중요하지만, 그 가게가 느끼는 분위기도 사실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집은 생각날 때마다 또 방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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